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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세월호, 착한 아이들은 이제 이 곳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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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적는다라고 쓰고 기억한다고 읽는다.

착한 아이들은 이제 이 곳에 없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며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울려 퍼진 방송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가만히 객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곳을 떠났다. 아니 떠나게 되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말썽 피우지 말고 잘 다녀오라던 부모님의 말은 부메랑이 되어 가슴에 몽우리가 맺힌다. 가슴을 쳐보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왜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하였을까, 아이의 문자에 선생님 말 잘 듣고 있어라고 보냈던 메시지는 가슴팍을 팍 움켜쥐고 떠나가질 않는다.

착한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이제 어느 누구도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을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설사 태풍이 불어와 갑판 위에 올라가면 안되는 상황일지라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사람은 이제 없게 되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윗사람의 말을 따르면 안 된다. 어른들의 말을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여야 된다. 6.25 격변기의 한강대교가 그렇게 무너졌고, 기관사가 열쇠를 빼고 달아난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역사는 반복되었기에 민초들에게 믿음은 스스로를 믿는 것밖에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유가족이 대통령께, 총리에게 하는 장면에 혹자는 지나치다 하였지만 이해가 되었다. 이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원칙을 먼저 배우게 된 것이 서글픈 현실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착하게 살아야 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 대신에 거짓말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면 된다, 십 억이 주어진다면 몇 년의 형을 살아 올 수 있겠는가 따위의 설문조사가 신문지상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 잠들어 있어 있던 이러한 부도덕, 부정직한 세상의 단면들은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되었다. 거대한 담론 속에 소용돌이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적자생존, 각개전투만이 남은 아전투구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신뢰를 저버렸다. 지위는 책임의 크기에 걸 맞는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학습효과로 이미 과거의 사건들로 인해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미안해야 한다. 착하면 안된다, 각자 판단해서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못하였다.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사회 속에서 그 비정함을 어릴 때부터 알려주기 싫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남긴다. 이제 앞으로는 아무도 믿지 말고 아무도 따르지 말라고. 수많은 매뉴얼과 백서가 나오더라도 가슴 속엔 맺힌 결과는 쉽게 따르기 힘들 것이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수많은 이가 안전를 외치고 다니지만, 정작 그들은 승자가 패자를 나누기 위해 힘 기울일 뿐 안전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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